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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미르매거진

낭만주의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22.

낭만주의란

 

 

낭만주의는 산업 혁명에 힘입어 18세기 중반 서유럽에서 발생한 예술사조이다.


18 ~ 19세기 계몽주의에 반대하여 나타난 낭만주의는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낭만주의의 첫 주자는 계몽주의 시대에 독일의 루소라고 불리던 헤르더이다.
헤르더는 감정과 감성, 민족역사를 강조하였으며,
그의 저서 "인류 역사의 철학적 고찰"은 후에 러셀과 헤겔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느낌과 감정을 강조하였으며, 계몽주의들이 설파 했던 이성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지만,
낭만주의자들은 결코 이성이라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과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파악 되었던
이성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고려하였다.
또한 이 낭만주의는 개성을 강조하고, 사회를 과거와 달리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겪는 것은 사회의 한 특징이라 말하였으며,
이것은 후에 《문명 형태학》(아놀드 토인비)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중엽에 성립된 로맨티시즘은 그 이상을 중세 봉건사회에서 찾고 있다.
그 주요한 동기는 사회의 분열과 이기주의의 만연을 부정하고,
중세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던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원망(願望)이다.
때로는 중세에서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완성이 가능했었다고 해서 그것을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
후자는 개인을 절대화하는 것에 의해 현실적으로는 니힐리즘으로 발전해 간다.
이에 대해 전자로부터는 사회를 개인보다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그것은 사회유기체론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상은 사회를 절대화하려는 내셔널리즘으로 그 맥락이 이어지게 된다.

 


특히 낭만주의는 문학에 선명하게 나타나서,
그 무렵부터 중세의 이야기나 이국정서 등에 비상한 흥미를 모으고 있다. 그
것은 지나치게 위압적인 경향에서 놓여나 인간의 자연적 욕구인 자유·정열로 내닫는 것이지만,
미술의 경우는 단지 제재를 문학이나 정서에서 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혁신적인 사상을 뿌리쳐 감정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내용이나 색채에 훨씬 정열을 의식케 하는 표현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
고전주의는 고대의 모방을 존중하고 있었으나, 낭만주의는 하나의 전형(典型)을 갖기보다도
개인을 해방하여 개개인의 감수성에서 새로운 창조를 추구하고 있다.
고전주의는 무궤도(無軌道)를 극도로 금지했으나,
낭만주의는 이성에 치우친 냉정함이 본래의 감동이나 정열을 없앨까 싶어 염려하고 있다.
이미 그것은 제1보로서, 프뤼동의 우아하고 고상한 작품도 로맨틱한 꿈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러나 확연한 기운을 보인 것은 그로의 정열적인 제작이었다.
그로는 루벤스의 정열적인 색채에 심취하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스승 다비드의 엄중한 교의(敎義)를 존중하면서도 그 분방한 천성은 유감없이 작품에 나타나서,
특히 전쟁화에는 초연(哨煙)의 냄새와 더불어 사람을 뒤흔들 것 같은 감동이 움직이고 있다.
그로는 그 색채에서도 약동이야말로 작품의 생명임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로에 이어서 제리코가 나오고, 다시 들라크루아가 나타나서 낭만주의는 크나큰 비약을 하게 되었다.